오래간만의 포스팅입니다.
몇 달 전에 중고로 구입한 Rockbox사(社)의 오버드라이브/부스트 이펙터 Boiling Point입니다.
한때 (대략 6~7년 전) '마블링 오버드라이브 페달 이펙터 3대장'으로 불리던 녀석들 중 가장 록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펙터입니다. 다른 둘은 Landgraff의 DOD와 Bob Burt의 오버드라이브입니다. 여담이지만 Rockbox는 언제부터인지 케이스에 마블링 색칠하기를 그만뒀고, Landgraff는 제작자 사후 가족들이 회사를 잇는 듯하다가 어느새 사라졌으며, 유일하게 남아있는 Bob Burt는 국내 유명 악기 판매점들에서 신품 구매가 가능합니다.
대학 입학 후 동아리에서 본격적으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 후, 장비병에 걸려 한창 삽질할 때 오버드라이브/디스토션 계열 이펙터 질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는 아직 프랙탈이나 켐퍼가 일반화되기 전이었고, 멀티 이펙터는 기계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이펙터 입문 단계에서 '이건 아니구나'하고 제쳤었던 기억이 납니다. (동아리방에 있던 복스 톤랩이었습니다) 동아리방에 굴러다니던 보스 SD1을 스쳐가듯 써보고 튜브 스크리머 계열 이펙터들을 거쳐 곧 부티크 페달 이펙터 단계에 도달했는데, 눈에 띈 이펙터가 이 '마블링 3대장'이었습니다.
'앰프 게인보다 좋다!' 식의 과장 섞인 국내외의 리뷰들에 혹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블링 기법 덕분에 똑같은 디자인의 페달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상과 리뷰들을 보니 랜드그라프는 뭔가 다루기 어려워 보이고 성향도 잘 안 맞을 것 같고, 밥 버트는 왠지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일링포인트로 마음을 굳혔습니다만, 문제는 가격이 거의 50만 원이었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국내 공식 딜러가 있어서 신품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Rockbox가 마블링 색칠을 그만 둘 줄 알았으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페달을 그때 사 둘 걸 그랬군요.
어쨌거나, 나름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부티크 페달 중 하나라서 회로도가 돌아다녔고, 그러다 보니 카피 페달을 제작해 파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구입해서 5년가량 메인 드라이브 페달로 잘 써왔습니다.
위 홈페이지 링크 들어가서 바뀐 디자인의 페달 색깔만 봐도 견적 나오겠지만, TS계열 오버드라이브입니다. 토글 스위치가 어떻게 작동해서 마샬 플렉시 톤도 나고 튜브 스크리머 소리도 나고 부스팅 용으로도 쓸 수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지만, 이런 TS 변형 페달들이 다 그렇듯, 가변폭이 넓다고 해봤자 톤 색깔이 분명한 편입니다. 프랙탈과 켐퍼가 지구 정복하기 전에 '앰프보다 좋다!'를 내세우던 오버드라이브 페달들이 대체로 미들을 잡아 올려놓은 경향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취향에 맞아서 장비 바꿈질을 멈추고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토글... 왼쪽에 베이스 부스트 스위치가 있고 오른쪽에 클리핑 모드를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어 총 6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만, 라이브 중 바꿀 방법이 사실상 없고, 엄지발가락 미세조절로 어떻게 한다 쳐도 모드 별로 볼륨 밸런스가 다 달라서 못 씁니다. 결국 한 곡에서 한 가지 모드에 고정해놓고 사용하게 되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드는 소위 808 모드로 불리는 대칭 클리핑 모드에 베이스 부스트는 끈 상태입니다.
노브는 어떻게 돌려놓든 좋은 (적어도 납득할 만한) 소리가 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싶으시면 TS808 드라이브 노브랑 톤 노브를 최대로 두고 볼륨을 적당히 조절한 다음 그 소리를 들어보시면 됩니다. 그게 그 이펙터가 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소리인데 그 안쪽에서 뭘 하든 들어줄 만 하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처음 구매했을 때는 톤 노브를 10시 정도 두다가, 근 1년 사이에는 1시 정도 두고 있습니다. 물론 곡에 따라 가변적으로 조절합니다.
일대일 비교를 해 보았습니다. 정품 보일링포인트의 특징이라면 케이스가 일반 하몬드 케이스보다 크다는 것과, 드라이브 노브가 연속적이지 않고 중간에 딱딱 걸리는 지점이 있어 드라이브 양을 디지털 값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겁니다. 크기 문제는 페달보드에 배치할 때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것보다 더 큰 페달도 많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드라이브 노브에 걸리는 지점이 있는 건 곡마다 이펙터 세팅 값을 바꾸는 편이라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테스트하면서 받은 느낌은 같은 세팅일 때 정품의 마스터 볼륨이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정갈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어느 정도 편차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개된 회로도 가지고 제작했으니 톤이야 뭐 똑같습니다. '뭔가 잡음이 적고 깔끔하네' 싶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로 구분해보라고 하면 사실 구분할 자신은 없습니다. 분명 회로도만 놓고 보면 10만 원 안쪽으로 해결 가능한 물건인데 왜 300달러 500달러 700달러 하는가? 글쎄요. 누가 알겠습니까.
좀 시니컬하게 글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정말 좋은 페달입니다. 해외 포럼에서 '음악적인 톤을 내준다'라고 표현한 걸 본 적이 있는데, 노브를 아무렇게나 돌려도 괜찮은 소리를 내주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플렉시 모드'로 불리는 비대칭 클리핑 모드가 인기가 많았었는데, 좀 컴프감이 있고 게인이 많이 걸리고 마스터 레벨이 낮은... 뭔가 마스터링을 한 것 같은 소리가 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 모드를 애용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좀 더 거친 느낌의 '808 모드'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있더군요.
베이스 부스트는 TS 계열 특유의 도드라지는 미들 대비 부족한 저음을 채워줄 수 있는 옵션이라는 이유로 많은 TS 변형 페달들이 채택하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톤 가변성이 엄청나게 넓은 건 아니지만, 토글과 노브를 조절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TS808에 비해 게인도 꽤 많이 걸려서 가벼운 디스토션의 영역까지는 커버합니다. 특히 플렉시 모드에서는 게인이 많이 걸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소리가 납니다. 사족이지만 제 페달보드를 메탈 하겠다고 빌려갔다가 '이거 왜 게인이 안 걸려?'하고 당황하는 사람을 몇 명 봤었습니다. 부스트 모드도 쓸만합니다. 원래 TS 계열 이펙터들을 게인 부스터로 많이들 활용하는데 그 용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보일링포인트를 메인 드라이브로 사용하고 있어서 부스트 모드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건비와 대량 생산 등등 여러 문제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이렇게 되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Rockbox가 마블링 색칠을 그만두고 평범한 페달 제작하는 회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좀 아쉽습니다. 마블링 3대장 시절에는 뭔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페달'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바뀐 디자인은 모든 이펙터 회사마다 하나씩은 있는 흔하디 흔한 TS 변형 페달 중에 하나로밖에 안 보이네요.
시뮬 앰프와 이펙터들 가지고 세상 모든 톤을 그럴 듯 하게 다룰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나만의 소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류의 포스팅을 할 때는 사운드 샘플이나 영상을 준비하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요즘 할 엄두가 안 나서 구매 후 몇 달을 미루고 있다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뒤늦게 포스팅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운드 샘플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글이 좀 두서가 없었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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