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둘러봐도 아시겠지만, 이 블로그는 록 음악과 일렉트릭 기타에 대한 포스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계식 키보드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렸네요.
근데 사실 저의 주요 덕질 분야는 '식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원예 쪽이고,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각종 화훼 쪽입니다.
그렇다면, 네이버 블로그 하던 시절까지 합치면 블로그 시작한 지 대략 3년 째에 접어들고 있는데, 그동안 왜 식물에 대한 포스팅이 단 한 편도 없었느냐? 음...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왠지 멀리하고 싶었달까요. 근데 며칠 전에 일부러 피해 다닐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가끔 식물에 관한 가벼운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대체로 가정 원예에 관한 짧은 정보글이나 일기 같은 느낌이 될 것 같습니다만... 또 모르죠.
첫 글의 주제는 시클라멘입니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식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시클라멘은 지중해(대충 그리스에서 중동을 거쳐 북아프리카 정도)의 분지에 서식하는 앵초과의 다년생 식물입니다. 원예 자료를 찾다 보면 '가을에 알뿌리를 심는 식물(추식구근류)'들과 자주 묶입니다. 화분을 사려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알뿌리가 굉장히 잘 드러나는 식물입니다. 잠깐 사족으로 시클라멘의 경우 알뿌리가 흙에 파묻혀 있으면 과습으로 썩을 우려가 있습니다. 같이 묶이는 녀석들은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등등... 근데 얘들은 백합과란 말입니다. 앵초과인 시클라멘이랑 묶이면 안 되죠! 실제로 농업적(혹은 상업적)으로 시클라멘은 보통 종자를 심어서 키웁니다. 알뿌리 관리 요령도 차이가 있고요.
공통점이 있다면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등등도 대체로 지중해 근처 어딘가가 원산지입니다. 잠시 사회(세계지리) 시간으로 돌아가볼까요? 이 근처의 특징은... 예, 여름이 고온 건조하며 겨울이 온난하고 쾌적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에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휴식기를 갖고, 가을이 한 해의 시작이 된다는 느낌이죠. 반면 우리나라는 겨울이 너무 한랭 건조해 식물이 자랄 수 없어서 봄이 한 해의 시작이 됩니다.
시클라멘 말고도 많은 화초나 허브들이 지중해 근처가 원산지입니다. 이유는... 식물원 만들고 유리 온실 만들고 등등을 처음 시작한 동네가 유럽인데, 그 동네의 괜찮은 식물들이 지중해 연안에 많이 살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 동네 기후가 우리나라랑은 정 반대라는 겁니다. 겨울이 온난 습윤하고 여름이 고온 건조한 기후를 좋아하는 식물을 겨울이 한랭 건조하고 여름이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키운다?
시클라멘은 꽃이 드문 계절인 겨울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다가, 하트 모양의 무늬가 있는 잎도 관상가치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인기가 많은 식물입니다. 그래서 화분 하나 정도는 많이 사 보셨을 겁니다. 문제는, 많이들 죽이신다는 거죠.
사진의 시클라멘은 뭔가 꽃집에서 막 파는 것 같이 예쁘지가 않고 뭔가 꼬질꼬질(?) 하죠? 네, 기르기 시작한 지 1년 째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시클라멘을 오래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꽃집에서 꽃을 살 때, 보통 이런 패턴의 대화가 오갑니다.
"물은 얼마만에 한 번씩 줘야 하나요?"
"3일에 한 번씩 주시면 돼요."
그리고 보통 집에 가서 3일에 한 번 씩 물을 잘 줍니다. 근데 식물이 죽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식물 기르는 데 재능이 없다고 그만둡니다.
비가 오는 것보다 화분에 물을 주는 간격이 더 짧은 이유는, 화분이 크기가 작아서 물을 보관할 수 있는 능력이 작기 때문입니다. 근데, 그렇다고 물을 기계적으로 공급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위에서 나온 3일에 한 번을 예로 들면, 대충 '겉흙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식물을 죽이는 건 물을 안 줘서보다는 물을 많이 줘서입니다. 삼 년 가뭄은 견뎌도 석 달 홍수는 못 견딘다는 말도 있죠. 아무튼.
지중해 근처가 원산지인 식물들, 특히 구근 식물들은 물에 관해서 모순적인 조건을 요구합니다. 건기를 제외하면 (특히 개화기에는) 물을 많이 요구하지만, 습한 걸 매우 싫어합니다. 특히 알뿌리가 습한 상태로 유지되면 썩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아예 지중해나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사는 식물들은 더한데, 공기는 바닷바람이 불어 습하고 토양은 모래흙이라 건조한 환경을 선호합니다. 한국에서 이런 조건 만들어주기 아주 어렵습니다.
시클라멘의 경우 바다에서 먼 분지에서 사는 식물이라 조금 나은 편입니다. 꽃집에서 '1주일에 한 번' 이라고 할 텐데, 해석하자면 '겉흙이 말랐다 싶으면 흠뻑 주세요' 입니다. 그러니까, 손으로 겉흙을 만져보면서 촉촉함이 없고 까슬까슬한데 싶을 정도가 물 줄 타이밍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사항!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알뿌리가 습하면 썩어버립니다. 그래서 물을 위에서 부으면 절대 안 됩니다! 잎을 들추고 흙 표면에 물을 주는 방법도 안 좋습니다. 보통 '저면관수'라고 하는 방법을 많이 이용합니다. 화분 아래에 그릇을 받치고 거기에 물을 주는 겁니다.
일단 여기까지만 하셔도 시클라멘 안 죽이고 오래 기르기 반은 성공입니다.
글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것 같아, 그냥 비정기적으로 연재한다는 기분으로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시클라멘 화분은 일단 샀고, 뭔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는데 물 주기가 끝이냐? 하실 분들을 위해 앞으로 쓸 글들에 관해 간략하게 언급해보겠습니다. (사실 한 번에 다 적으려고 했어요)
잘 모르겠으면, 지중해 어딘가의 산속 분지는 어떤 곳일까?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세계지리 공부를 소홀히 하신 분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 남유럽에서 북아프리카의 강렬한 햇살이 필요합니다.
- 가을에서 봄까지는 온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영하로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시클라멘은 빛을 좋아하는 식물인데 20℃를 넘어서면 휴면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겨울이라고 실내 따뜻한 곳에 두면 빛도 못 받고 온도도 높으니 이대로는 못 살겠다면서 시들어 버립니다. 가을이 온 것 마냥 노랗게 노랗게 낙엽이 질 겁니다. 물론 지중해로 치면 봄이 지나 여름이 온 것 마냥... 일단 이 정도만 알고 계셔도 시클라멘을 안 죽이고 기르실 수 있을 겁니다.
비단 시클라멘이 아니어도, '이 식물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 알아보면, 식물을 잘 가꾸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 식물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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