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은 곧 폐쇄될 예정인 제 네이버 블로그에 2018년 7월 9일 업로드한 글입니다.
※ 당연히 현 시점(2020년 2월 17일)의 저와 과거의 저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쓴 글을 보존하는 의미로 원문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했습니다. 아래 글을 읽을 때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2014년부터 제 메인 기타로 활약(?) 하고 있는 PRS Custom 24입니다. 2009년 2월 생산이고요, 2014년 1월에 중고로 구입했습니다. 마호가니 바디, 마호가니 Wide Thin 넥, 로즈우드 지판, 오렌지색 플레임 메이플 탑 조합입니다. 픽업은 HFS/Vintage Bass 세트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보통 PRS 하면 펜더와 깁슨의 장점을 합친 기타라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요. 제 생각에는 대부분의 소위 '하이엔드' 기타 브랜드의 플래그십 모델들이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를 기반으로 하고 거기에 깁슨의 장점(특히 험버커 픽업의 잡음 없고 기름지고 이펙터 잘 먹고 존재감 있는 소리)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면, PRS는 깁슨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장점을 절묘하게 조합해 제3의 기타를 만들어냈다는 느낌입니다. 어쨌거나 수많은 기타 브랜드들 가운데서 PRS가 펜더, 깁슨 다음으로 뽑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하필이면 PRS 인지에 대해
제가 PRS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서태지 때문입니다. 정확하게는 서태지의 7번째 정규음반 《Issue》와 8번째 정규음반 《Atomos》의 레코딩에 PRS Custom 24를 사용한 영상을 보고서 PRS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최소 10년도 더 전이네요. 그때는 기타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일반적으로 일렉트릭 기타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들(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삐죽삐죽한 헤비쉐입 기타들)에 비해 참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족일 수도 있습니다만, 서태지 음반과 라이브의 갭이 제가 PRS를 신격화하게 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2004년 Zero Tour와 2008년 The Möbius 투어 당시 공연에서는 거의 아이바네즈 기타를 썼었는데, 그 소리가 분명 좋기는 한데 뭔가 코어가 없고, 뻑뻑하고, 어딘가 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그게 PRS와 아이바네즈의 차이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스튜디오 레코딩과 라이브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들이 어마무시하게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족의 사족을 달자면 서태지의 라이브 음향은 매우 훌륭합니다. 결벽증적인 완벽주의에다 그 정도의 투자를 하는 걸 생각하면 당연하지만요.
제가 서태지 매니아인지라 서태지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에서 PRS를 사용하는 사람이 서태지 말고도 꽤 많았었습니다. 우선 멤버들이 군입대하기 전까지의 넬이 PRS를 주로 사용했었습니다. 최근에는 펜더와 파노 등등이 자주 보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더 묵직하고 우울한 사운드가 취향인지라 PRS 시절이 그립습니다. 피아의 경우 다른 기타를 쓰다가도 <My Bed> 라이브를 할 때면 반드시 PRS를 쓰곤 했었습니다. 저는 이 곡의 맑고 청량하게 멀리 뻗어나가는 기타 소리를 좋아하는데, '저것도 PRS 때문이구나!' 생각했었습니다. 해외로 넘어가면, 200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코어가 대세일 때 메사부기에 PRS 조합이 대유행을 했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던 초기(대략 2010년 이전까지의)린킨파크가 PRS를 사용했었죠.
그 외에도 많습니다만, 이대로 계속 가다간 산타나부터 스티븐 윌슨까지 제가 좋아하는 모든 뮤지션들을 죄다 나열하게 될 것 같으니 이만 생략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어? 이거 괜찮은데!' 하는 음악이 있어서 정보를 찾아보면 십중팔구 PRS 아니면 텔레캐스터를 연주하고 있더라는 것만 덧붙여 두죠. 설명해놓고 보니 선입견과 오해로 점철된 첫인상으로부터 비롯된 삐뚤어진(?) 호감으로 보일 것 같은데, 해명을 위해 첨언하자면 다른 기타들과는 차별화된 외관도 제가 PRS를 좋아하게 된 중요한 요인입니다. 버드 인레이에 유려한 곡선에... 외모지상주의라고 뭐라 그러지 마십시오. 솔직히 기타 사러 가서 "우와 이거 예쁘다! 이 기타 소리 들어봐도 돼요?"는 말이 되지만, "우와 이거 소리 좋다! 이 기타 예쁘게는 못 만드나요?"는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와서 동아리 공용 악기였던 아이바네즈 RG 3120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생산이 중단된 지 15년이 넘은 지금도 명기 소리를 들으며 가끔 중고장터에서 거래되는 악기입니다. 그때도 10년은 묵은데다 암이 어디론가 사라지곤 없었지만 꽤 괜찮은 악기였네요. 마호가니 바디, 메이플 넥, 로즈우드 지판, 메이플 탑, 디마지오 HH 조합에 5단 레버 스위치. 당시 아이바네즈 RG 시리즈에 흔했던 베이스우드 기타들보다는 훨씬 깁슨 레스폴 느낌의 묵직한 맛이 있었으나, 메이플 탑과 넥이 사운드를 잡아줘서 꽤 범용적으로 사용하기 좋았었습니다. 특히 4단의 코일 탭 된 브릿지 픽업 소리를 꽤 좋아했었습니다. 펜더까진 아니어도 나름 스트랫을 기반으로 한 세션 기타 비슷한 소리가 났었고, 거기에 코러스 좀 걸어서 어쿠스틱한 반주까지도 커버했습니다.
하지만, 깁슨 레스폴 소리를 좋아하는 저에게 디마지오 픽업의 어딘가 텅 빈 것 같은 깡통 같은 사운드(이건 국내, 해외 포럼에서도 언급되는 이야기입니다)가 개인적으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습니다(결코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는,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입니다). 나름 특이한 목재 조합은 웬만한 사운드를 70% 정도는 재현해 줬으나, 그 어떤 소리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바네즈 RG 시리즈 특유의 얇은 D넥은, 분명 속주하기 편하다는데 한국인 치곤 손이 큰 편인 저에게는 코드를 잡으면 손이 남아돌아서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아이바네즈에서 오리지널 플로이드 로즈를 개량해 만든 Lo Pro Edge 브릿지는 생산이 중단되어 어딘가 고장이 나거나(나사 하나가 닳아서 못 쓰게 된 적 있습니다)암을 분실하면(이미 그런 상태였지만)아이바네즈 본사에서도 부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로 아밍을 못 한다니요! 결정적으로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는 줄 교체가 너무 힘들고, 변칙 튜닝을 라이브 중간중간 하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며, 무엇보다 기타 자체의 울림과 서스테인을 왕창 잡아먹는 주범이었습니다. 대략 1년 정도 그 기타를 사용하면서, 2004년 서태지를 들으면서부터생긴 아이바네즈에 대한 막연했던 선입견이 확실한 비호감 인상으로 콱 박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아이바네즈에 대한 불만을 하루하루 쌓아가면서, 제 나름대로 드림 기타의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었습니다. 일단 PRS Custom 24, 제가 좋아하는 열대바다색(청록색, 민트색, 에메랄드색, 밝은 파랑색, 미쿠 머리색, 뭐 그런 류의 색깔을 좋아합니다)에 물결을 연상시키는 퀼티드 메이플 탑, 얇은 넥, 5-way 블레이드 스위치, 59/09 픽업, 가능하다면 메이플 넥에 에보니 지판... 대략 이 정도 기타를 꿈꾸며 장터에서 몇 달을 잠복하고 있던 어느 날...
어쩌다가 이 주황색 기타가 내 기타가 되었는가에 대해
누군가가 이 주황색 PRS를 중고 장터에 올려놨었습니다. 분명 제가 생각하던 스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일단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 적용되던 속이 텅 빈 할로우 버드 인레이가 비호감이었고(이건 소리 및 연주감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 정말 개인적인 취향일 뿐입니다), 원래 5단 로터리였으나 중고로 살 때부터 교체되어 있었다는 3단 토글에 푸시/풀 톤 노브도 왠지 불편해 보이고, 구형인 HFS/Vintage Bass 픽업은 당시의 신형 픽업(57/08과 59/09, PRS의 픽업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에 비해 너무 다듬어지지 않은 소리가 난다는 느낌이었고(물론 동일 조건에서 비교한 소리 들어본 건 유튜브가 전부였습니다만), 무엇보다 오렌지색이라는 게 제일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랬습니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 기타가 거기 있는 겁니다!
정신 나간 소리 같습니다만, 그때 분명 내 기타가 거기 있었습니다.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여보세요. 제 기타가 거기 있는 거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 여기 울산인데요."
고속버스 택배니 뭐니 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만, 내 기타를 고속버스 택배로 받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래서 편도만 5시간쯤 걸리는 거리를 어떻게 뻘뻘거리고 가서, 기타를 받아서, 다시 5시간쯤 걸려 자정이 넘어서 집에 왔습니다.
집에 오니 어머니께서 명인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던데,라는 말로 시작하는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말없이 하드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서 튜닝도 안 하고 오픈 G 코드를 잡고 다운 스트로크를 한 번 긁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앰프에 꽂지도 못했었습니다만, 대략 5초 동안 말을 잃으셨던 어머니께서는,
“돈이 좋긴 좋구나.”
하셨습니다. 이상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 이후 지금까지도 이 2009년식 오렌지색 PRS를 정말 좋아하고,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기타는 제 기타일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주황이'의 사운드 샘플과 함께 PRS Guitars의 컨트롤부 및 픽업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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