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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작곡

거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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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은 현재 폐쇄된 제 네이버 블로그에 2019년 1월 30일 업로드한 글입니다.

※ 당연히 현 시점(2020년 2월 20일)의 저와 과거의 저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쓴 글을 보존하는 의미로 원문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했습니다. 아래 글을 읽을 때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거미의 동족 포식 습성을 모티브로 작업한 카니발리즘 연작의 첫 번째 곡입니다.

연작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한 작품뿐이지만 곧(?) 후속작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 모티브가 생각난 건 작년 10월 10일이었는데(관련 글), 어쩌다 보니 곡이 완성되는 데까지 4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네요.


 

(가사)

 

그 누구도 찾지 않는 나의 집을

주린 배를 움켜잡고 홀로 지킨 지 오래

반짝이는 빛과 이슬의 나의 영토에

머물지도 아니하는 바람만이 스쳐가

 

사탕·사과·빨강

 

오랜만에 전해지는 이 떨림과

처음 맡은 너의 냄새가 왠지 낯설지 않아

쭈뼛쭈뼛 망설이면서 다가오는 넌

어째선지 전하고픈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아아 그래도 나는 어쩐지 너를 먹고 싶어

아아 그래도 나는 어쩐지 너를 먹고 싶어

 

어디서부턴지 뒤엉켜버린 나의 욕망을 해명하고 싶진 않아

벌써 몇 달째 텅 비어있는 나의 뱃속을 너로 가득 채울래

빨간 너의 살갗에 나의 날카로운 독니를 찔러 넣고

입안 가득히 번지는 너의 하얀 피가 너무도 달콤해서

몸을 타고 전해지는 이 떨림이 뭔진 모르겠지만

굳어가는 너의 몸은 너무나도

 

굳어버린 네가 남긴 껍데기를 바라보면서

나답지도 않게 이미 늦어버린 생각에 잠겨

어째선지 너는 내게 간절했었고

나도 왠지 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지도 몰라

 

아아 그래도 나는 어쩐지 너를 먹고 싶어

아아 그래도 나는 어쩐지 너를 먹고 싶어

 

어디서부턴지 뒤엉켜버린 나의 욕망을 해명하고 싶진 않아

벌써 몇 달째 텅 비어있는 나의 뱃속을 너로 가득 채울래

빨간 너의 살갗에 나의 날카로운 독니를 찔러 넣고

입안 가득히 번지는 너의 하얀 피가 너무도 달콤해서

몸을 타고 전해지는 이 떨림이 뭔진 모르겠지만

굳어가는 너의 몸은 너무나도

 

사탕·사과·빨강


 

어쩌다 보니 8분 12초 분량의 대곡이 되어버렸습니다. 평소에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한다고 내세우고 다니긴 합니다만, 그리고 이 정도 분량의 곡을 만들어본 게 처음은 아닙니다만, 보컬로이드를 사용한 가창곡으로 범위를 한정하면 이 정도 분량의 곡을 작곡해본 건 처음인데 어떻게 들리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작업 기간이 늘어질 줄은 몰랐고, 곡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다만 작년 하반기에 제가 너무 바빴기 때문에, 진득하게 앉아서 곡 작업할 시간은 없었고, 가끔 기타 깔짝거리고 놀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 스케치들만 어마어마하게 쌓아뒀었습니다.

그러다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습니다. 본격적으로 곡을 구체화하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었는데, 평소에 작곡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아이디어들 중 버릴 건 버리고 괜찮은 부분은 취하는 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생각난 아이디어들을 다 살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그래서 평소 좋아하던 7080 실험적인 록 음악들 같은 느낌의 (예를 들어 <Stairway to Heaven>이나 <Bohemian Rhapsody>같은) 곡을 쓰기로 마음먹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곡 스타일도 그렇지만 <거미의 사랑>은 작업하는 내내 작곡을 한다기보다는 실험을 한다는 기분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컨대 유니×32 합창단을 구현한 부분이 그렇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만들 때 프레디 머큐리가 같은 파트를 100번 이상 반복 녹음해 합창단 같은 효과를 냈다는 점에 착안해서 작업을 했는데, 이거 진짜 개노가다였습니다만 그래도 같은 파트를 32번이나 반복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는 보컬로이드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기타 톤에서 7080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엄청나게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특히 기타 솔로는 요즘 듣기 힘든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만들 때는 개인 취향 100%를 쏟아부었지만, 타인들에게 내놓으려고 보니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곡이 금방 나올 줄 알고 일러스트를 미리 받았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군 입대를 앞둔 시점에 막연한 모티브에 대한 설명만 가지고서 멋진 일러스트를 그려주시고 입대하신 푸른고양이님께 감사드립니다. 군 생활 부디 힘내시고 아무 탈 없이 전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디어를 다 모아놓고 보니 곡이 너무 장황하게 길어지는 데다가, 이거 다 작업하기 전에 쓰러져 죽겠다 싶어서 8분 10초 분량에서 타협을 봤습니다. (러닝타임으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5분 55초)와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8분 2초)을 이겼다!)처음에는 무난하게 곡의 절반 지점에서 자를까 했는데, 아무래도 절정 부분이 없어지면 너무 곡이 지루해진다 싶어서 중간을 잘라냈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카니발리즘 연작의 두 번째 곡으로 찾아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발... 이번에는 4달이나 걸리진 않겠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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