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은 곧 폐쇄될 예정인 제 네이버 블로그에 2018년 8월 15일 업로드한 글입니다.
※ 당연히 현 시점(2020년 2월 18일)의 저와 과거의 저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쓴 글을 보존하는 의미로 원문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했습니다. 아래 글을 읽을 때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주 동안 자작곡 만드느라 바빠서 다른 일에는 소홀했습니다. '겨우 이런 거나 만드는 주제에...'라고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래 봬도 제가 이 블로그 하면서 최고 메인으로 생각하는 게 작곡입니다. 이번 곡 <당신을 위한 이세계행 트럭이 대기 중입니다>는 '나도 할 수 있어!'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서, '할 수 있을까?'를 지나, '이런 걸로 괜찮은가?' 즈음에서 어찌어찌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이 곡은 크게 두 가지 창작이 어디선가 합쳐져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음악적인 측면에서 완전 최초의 모티브는 '대량 학살' 및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이었고, Wowaka의 <소녀에 대하여>와 포큐파인 트리의 <Strip the Soul>을 믹서기로 잘 혼합한 것 같은 느낌의 곡을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들어줄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당시 만들었던 데모는 이런 느낌입니다.
그러다가 코드 진행 정도 남겨놓은 상태에서 방향을 거의 180˚ 선회했습니다. 주제도 바꿨고(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하겠습니다), 좀 더 서사적인 측면을 강조해보고 싶었습니다. '평소 좋아하긴 하지만, 직접 만들려고 시도해본 적은 없는 느낌으로 만들자!' 혹은 '좋아하는 작품들을 오마주해 보자!'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진(자연의 적P)의 카게로우 프로젝트를 많이 빌려왔으며, 이를 포함해 Wowaka, 피노키오P, 와다 타케아키(쿠라게P), 네루 등의 여러 일렉트릭 기타가 강조된 보컬로이드 악곡들과 한국 모던 록/사이키델릭 인디밴드 음악들을 참고해가며 만들었습니다만, 곡 마무리 단계에서 반복해서 들은 곡은 엉뚱하게도 서태지의 <Replica>였습니다. 의도적으로 지금까지의 제 자작곡들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색채를 평소보다 절제하면서, 그 대신에 영향받은 곡들이 잘 드러나도록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게 듣는 사람에게도 느껴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Wowaka가 이끄는 밴드 히토리에에 관해, '보컬로이드 대신 Wowaka 본인이 보컬을 맡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채로 음악을 하는 것 같다.'라는 식의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인 취향 반영된 평가를 하고는 합니다. 제 자신도 이런 근거 부족한 비판에서 별로 자유롭지는 않은 것이, 개인 취향은 보컬이 없는 연주곡입니다만, 의도적으로 당분간 연주곡은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하고서 블로그(에 업로드되는 이런저런 프로젝트들)를 시작했습니다.
연주곡 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일부 반영되어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음악에 보컬이 필요한 이유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납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음악에 개입시키는 것이 음악에게는 방해라면 방해지,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요즘은 '언어 없는 음악을 과연 인류의 몇 %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조금은 건방진 것 같기도 하고, 현실에 타협하는 것 같기도 한 태도로 곡을 쓰고 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연주곡 버전 쪽이 음악적으로 감상할 가치는 조금 더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후렴(Chorus) 부분은 메인 멜로디가 없는 편이 다양하게 집어넣은 소리들을 감상하기에는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러면 곡이 담고 있던 이야기가 사라져버리지만요.
이 곡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지난겨울 즈음 구상해봤었던 소설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최초 모티브는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및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철학(의 단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보 같은 소리지만, 만화 『가브리엘 드롭아웃』 및 라이트노벨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그리고 이들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소설 플롯이 만들어지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두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빌려온 것은 없습니다.
소설에서 사용하려고 했었던 비유와 상징들은 앞에서도 언급한 '카게로우 프로젝트'에서 많이 빌려왔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오히려, 독일 민간 전설 파우스트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넘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에 이르는 것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21세기 파우스트' 혹은 '컨템퍼러리 파우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공들여 만들어봤자 아무도 안 읽어줄 것 같고, 무엇보다 읽을 가치도 없는 무언가가 될 것 같아서 그만뒀습니다.
결국 이 앞으로도 집필되지 않을 것 같은 소설의 도입부를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기로 한 이유는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세한 건 내용 누설인데다가 별로 대단하지도 않아서 적지 않겠습니다만, 위에서 음악적인 측면을 소개할 때 언급한 소재 중 '대량학살'과는 어느 정도 통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계속 곡을 만들게 될지는 지금 시점에서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멀리는 핑크 플로이드, 드림 시어터, 포큐파인 트리의 콘셉트 음반들, 가까이는 진(자연의 적P)의 카게로우 프로젝트 같은 '세계와 이야기를 담은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만, 그걸 제가 할 수 있을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의무적인 태도'로 곡을 쓰고 싶지는 않고요.
이 글을 왜 쓰기 시작했는가 하면, 그냥 인터뷰 같은 걸 해 보고 싶었습니다. 유명인들이 하는 그런 거요. 헛된 꿈일지도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창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좋게 말하자면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아마추어 느낌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는 있습니다만, 나중에 만에 하나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 있는 작품이 나왔을 때, 그게 음악이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포큐파인 트리의 《Voyage 34》 음반 리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작곡하는데 정신적인 소모가 심해서, 좀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거 뭐 없을까? 하다가 집었습니다. 무슨 음반에 대해서 리뷰하든, 가사를 죽 늘어놓고 의미를 파헤치는 건 언제나처럼 하지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음반에는 내레이션은 있어도 '노래' 한다고 할 만한 게 없다는 게 선택 이유 중 하나입니다.
'페달보드로 레코딩하기' 라는 글에 의외로 유입이 많았는데, '이 글, 영양가가 너무 없어서 어쩌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관련해서 시리즈물처럼 여러 편의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전문적인 장비 없이 집에서 일렉트릭 기타 레코딩을 해 보려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별생각 쓰고 있는 이 글이 나중에 학자들이나 평론가들에게 단어 단위로 해부당하는 수준의 사회적인 맥락과 의미를 갖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문득 해 봅니다. <당신을 위한 이세계행 트럭이 대기 중입니다>도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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