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투고된 wowaka 님의 세 번째 오리지널 곡, 〈라인아트〉를 커버해 보았습니다.
기타 커버 영상을 올리는 건 지난 〈테노히라〉 이후 2년 만이네요. 그때도 "정말 좋아하는 곡이긴 합니다만 커버 영상을 찍기에는 각이 잘 안 나오는 곡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라고 썼었는데,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그레이존에서.〉와 〈테노히라〉에 이어지는, 소위 wowaka의 끝말잇기 시리즈의 3번째 곡입니다. 원곡은 2009년 니코니코 동화에 업로드되어 있는데, 앞서 말했듯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이 곡이 특히 의미가 있는 이유는 wowaka가 투고한 곡 중 처음으로 기타 소리가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wowaka가 본격적으로 록 장르를 향해 가는 중요한 지점에 있는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나온 곡들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쉽게 생각합니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기타 트랙이 이미 있는 곡이어서 고민이 더 길어졌습니다. 물론 2년 동안 이 문제로 고민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전의 〈그레이존에서.〉와 〈테노히라〉는 원곡(니코니코 동화에 투고되고 《the monochrome disc》에 수록된 버전)에 기타가 없어서 '이 곡에 기타가 추가된다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편곡하고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라인아트〉는 이미 기타가 있는 확실한 포스트록-슈게이징 장르의 곡이어서, 이걸 무시하고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겠습니다만, 고민 끝에 '원곡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소녀에 대하여〉 커버했을 때처럼 부족한 능력이나마 원곡 그대로 연주하되, '기타 커버'니까 기타가 조금 더 잘 들리도록 톤을 잡고 믹싱을 하는 쪽으로요.
그런데 기타만 잘 들리게 만들면 곡의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이라, 〈그레이존에서.〉 커버했을 때처럼 기존의 악기들도 다듬는다는 느낌으로 보강했습니다.
다른 wowaka 보컬로이드 오리지널 곡들이 그렇듯 〈라인아트〉도 《Unhappy Refrain》에 수록된 버전이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wowaka 초기의 피아노·신시사이저가 강조되는 곡들과 이후 기타가 중심이 되는 단출한 록 밴드 편성 곡들의 과도기 단계에 끼어있는 곡들을 좋아해서 〈그레이존에서.〉와 〈테노히라〉를 커버할 때, 의도적으로 《Unhappy Refrain》 버전을 멀리했었습니다. 〈라인아트〉의 경우 《Unhappy Refrain》 수록 버전이 '원곡자에 의한 개선된 리메이크'에 가깝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도입부 드럼 패턴부터 다른 걸 듣고서는 커버 작업하는 내내 한 번도 듣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물론 정해진 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있겠습니다만, 제가 보컬로이드 입문하던 시절에 열심히 듣던 버전이 니코니코 동화 - 《the monochrome disc》 버전 쪽이기도 하고, 작곡도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은 작곡가가 곡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단 한 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는 구식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걸 본 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였습니다만, 분명 더 오래된 버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인용문에서 생략했을만한 뒷말을 덧붙이자면 '이후에 존재하는 모든 악보와 연주는 작곡가가 떠올린 음악의 불완전한 사본이다' 정도가 되려나요? 원곡에 있던 악기들을 좀 더 잘 들리게 만들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매력을 최대한 부각하는 시도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어쿠스틱한 느낌의 드럼을 보강하고, 베이스를 직접 연주하고, 위에 기타를 녹음했습니다.
wowaka 곡이니까 양심상(?) 텔레캐스터로 녹음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물론 했습니다만, 저번 〈시스투스〉 후기 글에서 언급했듯이, "텔레캐스터를 가지고 녹음하기가 끔찍하게 싫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해하실까 봐 덧붙이자면 텔레캐스터가 싫은 게 아니고 텔레캐스터로 녹음하기가 싫었다는 뜻입니다. wowaka 님이 2014년부터 Psychederhythm Standard-T를 메인기타로 활용하시기도 했고, 슈게이징이라는 장르가 워낙 재즈마스터와 찰떡이라서, Psychederhythm Psychomaster '초록이'로 모든 기타 트랙을 녹음했습니다.
영상 촬영이라도 텔레캐스터로 할까 역시 잠시 고민했었습니다만, 일종의 기만인 것 같아서 그만뒀습니다.
기타 커버 음원 작업은 물밑에서 꽤 하고 있었지만, 영상 촬영은 오랜만이어서 시행착오가 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겠습니다만, 〈라인아트〉라는 곡과 노이즈가 조금 깔린 흑백 영상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작업했습니다.
영상을 봐주시고, 혹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wowaka는 정말 각별한 의미가 있는 아티스트여서 wowaka의 보컬로이드 오리지널 전곡을 완벽하게 카피해 보는 것이 인생 목표 중 하나입니다. 숫자가 유한하게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두 번째 곡에서 세 번째 곡으로 넘어가는데 2년이나 걸리고서 해도 되는 말인가 싶긴 하지만 긴 시간을 들이더라도 성실하게 작업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wowaka 커버는 아마도 〈とおせんぼ(통행 금지 놀이)〉가 될 것 같습니다. 역시 기타가 있는 곡이지만, '기타의 공백'도 긴 곡이라 방향성을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작업해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