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인 External Keyboard Helper의 사용법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마무리를 했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방향을 틀었습니다. 일단은 제가 가장 최근에 구매한 키보드이자, 최근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메인이라지만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가장 오랜 시간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레오폴드 FC900R 청축에 관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사실 전에 간략한 대면기(링크)를 작성했던 키보드입니다. 보통 간략한 대면기를 쓰고 나서 충분한 기간을 사용해 본 후 상세한 사용기를 쓰는 걸 목표로 포스팅을 하지만, 대체로 간략한 대면기 다음의 글을 안 쓰게 됩니다. 악기나 관련 장비들은 말로 100마디 하는 것보다 녹음이나 영상으로 5초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이도 저도 안 하게 되네요.
기계식 키보드도 그런 성격의 물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타건해봐야 확실히 파악할 수 있고, 간접 경험이라면 타건 영상 찾아보는 게 더 효과적이지요. 레오폴드 키보드의 경우는 워낙 유명하다 보니 타건 영상이나 리뷰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결과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 같은 키보드 초보자가 뭐라고 더 보태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감안하고 봐주시리라 믿고 대략 한 달 정도 사용해 본 사용기를 작성해보겠습니다.
처음 기계식 키보드에 입문할 때, '너무 시끄러워서' 선택하지 않았던 청축 키보드를 들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듀가드 퓨전 청축을 사용해보고 그 매력에 새삼 반했기 때문입니다. 관련해서는 전에 쓴 두 편의 글(링크 1)(링크 2)을 참고해주세요.
'듀가드 퓨전도 컴퓨터에 유무선으로 연결할 수 있으니 굳이 새 키보드를 살 건 없지 않은가?'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무래도 풀배열 키보드가 아니면 너무나도 불편한 상황(지난 포스팅에서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큐베이스라는 DAW를 사용하는데 F열과 넘패드에 많은 단축키가 할당되어 있습니다)이라 풀배열 청축 키보드 구매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뭐, 구매한다면 레오폴드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청축은 레오폴드에서 가장 안 팔리는 스위치라 어느 정도 골라잡을 수 있었습니다만, 딱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와중에, 전에 한정판으로 나왔었던 화이트 민트 색상의 키보드가 FC900R과 FC750R로 출시된다는 공지가 떴습니다. 개인적으로 에버그린이나 화이트 민트 중 하나가 FC900R로 나온다면 무조건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뭔가에 홀린 듯이 판매가 개시되자마자 구입해버렸습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그러면 한 달간 사용하면서 느낀 점들을 간략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청축에 대해서 '기계식 키보드 입문용으로 가장 좋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여기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러버돔식 멤브레인 키보드나 팬터그래프 키보드를 사용하다가 기계식에 입문한다고 했을 때, 가장 '차별화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스위치는 청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청각적 피드백(클릭음)과 촉각적 피드백(걸림), 이 두 가지 특징은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제공합니다. 비싼 돈 주고 구입하는데,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상황에 처하는 것보다, '이거 뭔가 다른데!' 하는 신선한 느낌을 받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클릭음과 걸림이 상황에 따라 장단점이 되고, 그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소음이 상당히 큽니다. 개인적인 경험인데, 대낮에 제 방에서 듀가드 퓨전 청축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중에 어머니께서 무슨 일이냐고 들어오신 적이 있습니다. 찰칵찰칵 소리가 너무 컸다나요? 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청축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기계식 키보드에 입문하는 이유 중 하나로 게이밍 기어를 찾으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과연 (체리) 청축이 좋은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스프링 압력이 강한데다가, 강한 걸림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강하게 눌러야 해서 금방 피로해질 수 있습니다. 찰칵거리는 소리도 처음 들을 때는 기분 좋은데, 오래 사용하다 보면 거슬리는 소음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또, 걸리는 지점과 입력 지점이 다른데, 이 때문에 딜레이 없이 연속적으로 빠른 입력을 하는 데는 리니어 방식인 적축이 훨씬 적합합니다. 개인적인 느낌인데 빠르게 타자하는 것 자체에는 흑축이 가장 좋은데, 정확하게 딱딱 입력하고 있다는 인상이 드는 건 청축입니다. 리니어 스위치는 누르면 피드백 없이 쑥 들어가다 보니 오히려 오타가 잦아지더군요.
덧붙여, (제가 이것저것 키보드를 많이 사용해 본 건 아니지만) 레오폴드 청축은 소음과 걸림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레오폴드 갈축에 대해서도 '걸림이 타 회사 제품보다 약하게 느껴진다'는 리뷰가 자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는 직접 타건을 해 보시는 게 가장 확실하겠지만, 간접 경험이라도 구매하실 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 '가지고 놀기'에는 듀가드 퓨전의 철컥철컥 하는 느낌이 좋고, '일 하기'에는 레오폴드 FC900R의 찰칵찰칵하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리고, 인디케이터의 시연성 측면에서 화이트 민트가 애쉬 옐로우나 블랙 퍼플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특히 (실수로 자주 누르게 되는 키인) CapsLock의 경우 어두운 색 계열 키보드에서는 잘 안 보이는데, 화이트 민트에서는 확실하게 구분이 됩니다.
사진으로 보시면, 우선 화이트 민트의 경우 CapsLock 인디케이터가 꺼졌을 때(위)와 켜졌을 때(아래) 이 정도 차이가 납니다.
비교 대상은 레오폴드 FC900R PD 애쉬 옐로우 갈축입니다. 위는 꺼진 상태, 아래는 켜진 상태인데,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변 조명이 밝다거나, 타자할 때 사선 아래로 내려다보는 각도면 시연성은 더욱 떨어집니다.
혹시 LED 조명 자체의 문제가 아닐까 해서 키캡을 뽑고 확인해봤습니다만, LED의 밝기는 둘이 비슷했습니다. 사진에서는 조명과 보정의 차이로 살짝 밝기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애쉬 옐로우나 블랙 퍼플을 사용하면서 CapsLock 인디케이터 시연성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어서, 화이트 민트가 더 마음에 듭니다. 레오폴드 홈페이지에 올라온 상품 설명 사진에서도 밝은 색 계열 키보드에서 좀 더 인디케이터가 잘 보입니다.
그렇다고 밝은 색 키보드가 무조건 좋으냐 하면 당연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밝은 색 키보드가 변색이나 오염에 더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건 좀 더 긴 시간 사용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겠네요.
레오폴드 키보드들을 스위치 별로 사용하면서 느낀 점은, 키보드의 기본에 굉장히 충실하고 있다는 겁니다. 비싼 돈 주고 샀는데 뭔가 특별한 게 없어서 심심하다고 생각하실 분도 물론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화려한 LED 이펙트라거나 잘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되는 특수기능들(절전 모드 버튼이라거나 그런 거요)이 없어서 레오폴드를 선택하게 된 것도 있습니다. 단정한 디자인은 처음에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오랜 시간 질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트 민트 배색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아무데서나 사용하기에는 눈에 띄는 측면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아하는 색입니다.
갈축·흑축·청축을 길게는 반 년, 짧게는 한 달 정도 번갈아가며 사용하면서 느낀 소감은, 음...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각각의 매력이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전부 다 갖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청축 특유의 강한 구분음과 클릭음에 매력을 느끼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게 손끝도 아프고 너무 성가시게 느껴져서 분명 흑축을 꺼내게 되는 순간이 있거든요. 요즘은 재고가 잘 없지만 백축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축 수준의 강한 구분감이 있으면서 클릭음이 없다면 또 자주 사용하게 되는 매력이 있을 것 같거든요.
이제 당분간 키보드를 새로 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뭐, 미래는 또 모르는 겁니다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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